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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순신 장군 해전 순서 본문

각종 기록과 통계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 해전 순서

1이슈 2019. 12. 6. 16:59

1545년 한성부 건천동(현재 인현동 부근)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순신은 32세가 되어서야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습니다.


1591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면서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수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불패 신화를 이루며 조선을 구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임진왜란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해전 순서와 전과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1차 출전---


<옥포해전> 1592. 5. 7 (26척 격침)


<합포해전> 1592. 5. 7  (5척 격침)


<적진포해전> 1592. 5. 8  (13척 중 11척 격침)




---2차 출전---


<사천해전> 1592. 5. 29   (13척 격침/전멸)


<당포해전> 1592. 6. 2  (21척 격침)


<당항포해전> 1592. 6. 5  (26척 격침)


<율포해전> 1592. 6. 7   (7척 격침 및 나포)




---3차 출전---


<한산도대첩> 1592. 7. 8   (59척 격파, 14척 나포)


<안골포대첩> 1592. 7. 10  (적선 42척 중 20여척 격파)




---4차 출전---


<장림포해전> 1592. 8. 29  (6척 격파)


<화준구미해전> 1592. 9. 1   (5척 격파)


<다대포해전> 1592. 9. 1   (8척 격파)


<서평포해전> 1592. 9. 1 (9척 격파)


<절영 해전> 1592. 9. 1 (2척 격파)


<초량목해전> 1592. 9. 1 (4척 격파)


<부산포해전> 1592. 9. 1 (적선 470여척 중 100여척 격파)




---5차 출전---


<웅포 해전> 1593. 2. 6 ~ 4. 3 (왜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조선 포로를 구함)




---6차 출전---


<제2차 당항포해전> 1594. 3. 3 ~ 3. 5 (31척 격파)




---7차 출전---


<장문포해전> 1594. 9. 29 ~ 10. 7 (적선 2척 격파)




---백의종군---


1597년에는 이순신 장군의 공을 시기하는 조정과 일본의 이간책 등으로 서울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과 함께 옥살이를 하다가 백의종군(벼슬이 없는 상태로 전쟁에 참전함)하게 됩니다.


이후 1597년 7월 7일 ~ 7월 15일에는 거제시 하청면 칠전도 해엽에서 "원균"이 지휘한 조선수군 200여 척이 일본에 유인 전술에 빠지면서 거의 모든 전선이 격파됩니다.


그리고 다시 위기를 느낀 조정은 어이없는 죄명을 뒤집어 씌어 죽이려고까지 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겨우 12척의 배와 사기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수군으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수군을 폐하라는 영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으며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허술히 보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올리며 전열을 가다듬게 됩니다.



---8차 출전---


<명량해전> 1597. 9. 16 (12척의 배로 133척과 싸워 적선 31척 격파)




---9차 출전---



<절이도해전> 1598. 7. 19 (50여 척 격침)


<장도해전/왜교성전투> 1598. 9.20~10.7 (30여 척 격침, 11척 나포)


<노량해전> 1598. 11. 18 ~ 11. 19 (적선 500여척 중 450여척 격파하며 대승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도망치던 적을 끝까지 추격하던 이순신 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죽는 순간까지도 이순신 장군은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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